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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도관 관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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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도관, 전에는 조후사라고 하였는데 조후묘, 오상후묘라고도 한다. 조병에게 제사 지내기 위해 걸설하게 되었고 이는 진운에서 문자기재가 있는 가장 유구한 노사당건축이다. 조병은 자가 공아이며 동양인이고 동한시기 의술이 뛰어난 의사였다. 한번 조병이 선도에 유람왔을 때 전란에 인하여 온역이 크게 유행했던 상황에 조병이 사람들을 치료해주고 수만은 사람을 구하였다. 백성들은 그의 은혜에 감격하여 사당을 세워서 제사를 지내였다. 그 당시에 진운선도 일대는 오상현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조정에서는 대장군과 오상후로 책봉하였다. <도사하산> <비도우견비도> <사조영웅전>등 드라마들을 여기서 촬영하였다.

천아부란(백조부화). 청룡산 사이 평지에 거석이 많이 겹쳐 있는데 윗부위의 거석은 백조와 같고 아래부위의 돌들이 작아서 새알과 같으며 전체로 볼 때 백조가 알을 품고 있는 모습으로 생동한 백조부화라는 기관을 형성되었다. 이의 형성은 절리가 많고 틈이 많은 유문암산체가 풍화침식과 유수침식 특히 중력붕괴작용하에 암석덩어리는 들쭉날쭉하게 쌓여 있고 암석덩어리 표면은 천만년의 구형풍화에 의하여 지금의 상태로 되었다.

청지동(영지동). 백조부화하에 활 모양 거석은 교차되게 연결되였는데 한송이한송이의 영지가 겹쳐서 동굴이 형성되어서 영지동이라고 한다.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동굴에 들어가면 중간부위에는 갱실 3개가 있고 좌우로 동굴이 연결되여 두 개울물이 돌을 에둘러 흐르면서 물소리가 아주 건드러지다. 동굴에서 놀다보면 소리만 들릴뿐 사람그림자는 볼수 없어 미궁에 들어간 듯하다. 동굴내에는 조용하고 아늑한데 겨울에 따듯하고 여름에 시원하다. 동굴밖으로 나와 돌아래에 서서 보면 원형거석은 칼로 베인 듯이 보여 선부암이라고 한다. <도사하산> <서검은구록> <봉신방 지 봉명기산> <나타>등 드라마들은 여기서 촬영하였다.

초은동. 초은동은 선도관 청용암 밑에 있는 동굴이고 상하 2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래의 동굴은 크고 넓어 사람 백여 명을 용납할수 있고 동굴위의 높은 벼랑이 있으며 비가오는 날에 물이 폭포와 같고 맑은 날에는 물방울이 커튼과 같아서 우주동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동굴 뒤의 석벽에는 편작 등 고대8대신의의 조각이 있다. 윗부분의 동굴은 작고 낮으며 앉아서 휴식을 취하기 좋은 곳이다. 전하는데 의하면 나무꾼이 여기서 바둑을 뒀는데 한판을 두는 사이 칼자루가 이미 부패하였다. 신선의 한판의 바둑은 인간의 백년이나 지났는데 나무꾼이 동굴에서 신선을 만나였던 것이였다. 이로 인하여 란가동(문드러질난, 자루 가)이라고 불리게 된다.

조후선. 청용미(청용의 꼬리)암 서쪽에 작은 시내가 있고 중간에는 배와 같은 돌조각이 가로누워 있다. 전하는데 의하면 오상후 조병은 여기서 자주 휴식을 취하여 조후선이라고 이름짓게 되였고 조후항, 대석항이라고도 하였으며 고인은 “석주(석배)”라는 두 글자를 돌에 새겼다. 청대의 조녹명의 <조후선>이라는 시에서는:“작은 배를 타고 있노라면 세상의 모든 고민과 번뇌가 순식간에 사라질 가벼운 연기와 같다. 조후선은 산에 남아 있고 풍파에 맞아 강물에 뜨지 않는다”라고 하였다.